*대단히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평점 ●●●●○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은
2019년 개봉된 「나이브스 아웃」의 속편입니다.
1편을 연출했던 라이언 존슨이 또 한번 감독을 맡았고,
전편에 나왔던 탐정 브누아 블랑도 또 나오죠.
탐정이 또 나온다는 것은- 시퀄 역시
클래식한 추리소설과 유사한 흐름으로 가겠다는
의사 표명이겠지요.
1편보다는 적지만, 이번에도 등장인물이 제법 많아서
포토샵으로 관계도를 그려왔습니다.
가장 중간에 있는 마일스 브론(에드워드 노튼 扮)은
엄청난 부자입니다.
'알파'라는 대기업을 세워서 떼돈을 벌었죠.
알파에서 일하는 과학자
라이오넬(레슬리 오덤 주니어 扮),
정치가 클레어(캐서린 한 扮),
연예인 버디(케이트 허드슨 扮),
유튜버 듀크(데이브 바티스타 扮)는
모두 마일스와 친구 사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클레어, 라이오넬, 버디, 듀크는
마일스가 보낸 추리게임 초청장을 받고,
마일스가 소유한 섬으로 떠나게 됩니다.
친구들만 부른 줄 알았더니,
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 扮)도
초대를 받고 와있는 겁니다?
친구들은, 마일스는 워낙 괴짜니까
실감나게 추리게임을 하려고
탐정까지 동원했나보다-라고 넘어갔죠.
그런데 잠시 후, 더욱 놀라운 인물이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카산드라 앤디 브랜드(자넬 모네 扮)가
초대장을 들고 나타난 것이죠.
사실 앤디는 마일스와 함께 알파를 만든
초창기 멤버였습니다.
그러나 의견 충돌로 인해 회사를 떠나고,
마일스와 등을 돌려버리고 말았던 것이죠.
그랬던 앤디가 마일스의 추리게임에 참가한다?
대단히 뻘쭘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쨌든 배는 무사히 마일스의 섬에 도착했고,
섬에는 유리로 된 양파처럼 동그란 지붕이 있는
화려한 별장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각자 배정받은 숙소에서 짐을 푸는 사이에,
마일스는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고 블랑을 불러내죠.
알고 보니 마일스는 블랑을 초대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초대한 적이 없는데 블랑은 초대장을 받고 왔거든요...?
이거 너무 수상하지 않습니까.
블랑은,
자기에게 초대장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하지만,
마일스는 크게 개의치 않고 그냥 넘겨버립니다.
그래서 블랑은 이 섬에 모인 사람들을
자체적으로 조사하기로 결정하죠.
그리고 블랑은,
이들이 겉으로는 절친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껄끄럽게 얽혀있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추리게임이 진행되고,
단순한 연극으로 끝나야 하는데
진짜 살인이 벌어지고 맙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블랑에게 초대장을 보낸 것일까요?
마일스와 친구들 사이에 흐르는
묘하고 불편한 기류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또, 살인사건의 범인은 누구일까요?
줄거리는 대충 이 정도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죠.
1) 1편과의 차이점
「나이브스 아웃」 1편에서는
영화가 시작함과 동시에 인물이 사망합니다.
그래서 러닝타임 내내 블랑이 범인과 사건의 진상을
어떻게 밝혀내는지를 보여주죠.
하지만 2편인 「글래스 어니언」에서는
영화 중반부가 돼어서야
'본격적인 사건'이라고 부를만한 일이 발생합니다.
총 러닝타임이 2시간 20분 정도인데,
시작하고 1시간이 지나서야 살인이 벌어져요.
그래서 취향에 따라 초반부를 약간 지루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조금 참고 끝까지 보시길 권장드립니다.
살인사건이 터지고 나서부터는 전개가 빨라지거든요.
여기서부터는 1편, 2편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2. 등잔 밑이 어둡다
미국의 소설가 반 다인은
추리소설이 반드시 지켜야 할 20가지 법칙
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중에서 제 1법칙은
「수수께끼를 해결할 때 독자는
탐정과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는 것이죠.
즉, 모든 단서는 명백하게 제시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결말에서 탐정이 사건의 진상을 설명하는데,
알고보니 그때까지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단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면,
너무나도 비겁하지 않습니까?
추리소설은 탐정과 독자의
두뇌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탐정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진행되면
독자는 빡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추리소설이 재미있으려면,
모든 단서를 다 알려주면서도 적절한 장치를 이용해
그것이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서들를 얼마나 등잔 밑으로 잘 밀어넣느냐가
관건인 것이지요.
「글래스 어니언」은 그 법칙을 아주 잘 지켰습니다.
앤디와 듀크를 죽인 범인이 마일스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 초반부를 보니까,
제 자신이 똥멍청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구요.
듀크가 폰으로 앤디의 사망소식을 보여줄 때
마일스가 듀크의 허리에서 권총을 빼가는 것도,
가져간 권총을 칵테일 바에 소리내어 내려놓는 것도
분명하게 다 나오거든요.
특히, 마일스가 자기 술잔을 듀크의 손에 쥐어주는건
아예 대놓고 보여줍니다.
물론 관객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쏠리게끔 하는
장치들은 존재합니다.
마일스가 입을 털면서 일장 연설을 하기도 하고,
버디가 화려한 드레스의 치맛자락을 펄럭이면서
춤을 추기도 하죠.
그래도 모든 진상을 다 알고 나면,
내가 왜 이걸 못 봤을까 싶어서
분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앤디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하려고 했던
냅킨이 든 빨간 봉투가,
사실은 마일스가 몇 번이나 들락거렸던 그 방에
줄곧 있었다는 건 진짜....
심지어 그 부분을 클로즈업으로 비춰주거든요?
여러분들도 이 부분 다시 보면
진짜 뒤통수를 후드려 맞는 느낌이 드실 거예요.
뭐, 아이고 내가 저걸 놓쳤구나하면서
다시 앞부분 찾아보고 하는게 또
추리영화의 묘미겠지만요.
3. 블랙 코메디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가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은
블랙 코메디가 찐하게 녹아있다는 겁니다.
단순하게 탐정이 나와서 추리하는 이야기였다면
이정도로 재미있게 느껴지진 않았을 것 같아요.
1편, 2편 모두
기득권층(부유한 백인)을 직접적으로 까면서,
최후에는 선량한 유색인종(1편은 히스패닉 마르타,
2편은 흑인 헬렌)이 승리하는 구도로 되어 있죠.
영화에 등장하는 '붕괴자들'은 실제 미국에서
충분히 볼 수 있을 법한 캐릭터들입니다.
자칭 남성인권 운동가인 듀크는 엄마에게 대들다가
귀싸대기를 맞고서야 닥치죠.
마일스에게 자기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밀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
여친인 위스키에게 몸로비를 지시할 정도로
강약약강인 쓰레기입니다.
버디는 인종차별적인 단어를 "뜻을 잘못 알고"
트윗을 올리는 바람에
비서에게 트위터 금지령을 당하고,
역시 "뜻을 잘못 알고" 자기 이름으로
트레이닝복을 론칭하는 바람에
공장 노동자 인권 학대 문제에 휘말립니다.
정말 빈수레가 요란한 격이죠.
*sweatshop(노동착취업체)를
sweat(트레이닝복) shop(업체)로 알아들었음
클레어와 라이오넬은,
마일스의 프로젝트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사리사욕을 위해 그냥 눈 감고 있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캐릭터입니다.
특히 마일스 브론은
'겉으로는 똑똑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멍청하기 짝이 없는 빈껍데기'
그 자체인데요.
저는 마일스 브론을 보면서,
일론 머스크에 스티븐 잡스를 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냅킨에다가 창업 아이디어 메모했다는 건
제프 베조스의 일화를 따온 것 같구요.
라이언 존슨이 일론 머스크한테
원수진게 있나 싶을 정도로 대단히 노골적입니다만,
감독 인터뷰를 보면 의도한 바가 아니라고 하는데...
요즘 일론 머스크가 하는 짓 보면
노리고 만든 게 아닐까 하는 킹리적 갓심이 듭니다.
4. 결말이 좀 아쉽다
"알고 보니 쌍둥이였다"는 클리셰를
사용한 것도 약간 아쉽지만,
폭력적인 결말로 끝을 맺은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 1편에서처럼
탐정이 추리를 통해 정의를 구현하는 스토리를
좋아하는데요.
이번에는 유일하게 증거로 쓸 수 있는 냅킨이
너무 허무하게 불타버리고,
헬렌이 글래스 어니언을 개박살내면서
억지로 정의를 이끌어낸 것 같습니다.
요즘 이야기하는 소위 '참교육 감성'이랄까요.
내 손으로 직접 사회의 매운 맛을 보여주마!
같아서 권선징악을 쥐어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헬렌이 유리 조각상을 하나하나 깨부수고
칵테일 바를 넘어뜨려서 불까지 지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는 것도
좀 작위적으로 보였어요.
누구든 1명이라도 헬렌을 막았으면
마일스가 이기고 끝났을텐데,
마일스 본인조차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는 게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5. 김 빠진 사이다
1편에서는 마르타를 제외한 사람들이
전부 엿을 먹으면서 끝났습니다.
랜섬은 체포됐고, 나머지 가족들은 한푼도 못 받고
집에서 쫓겨났죠.
2편에서는
캐릭터들의 쓰레기 레벨이 더 높아졌기 때문에
더욱 시원한 사이다로 싸~악 내려주기를
기대했는데요.
음... 사이다이긴 한데 좀 미적지근합니다.
마일스는 살인죄에 모나리자까지 태워먹었으니
형사든 민사든 둘 다 아주 ㅈ되겠지만,
다른 붕괴자 멤버들은 죗값을 치르게 될지 어떨지
모른 채로 끝나거든요.
뭐, 앤디의 재판에서 증인으로 섰을 때
위증에 대한 처벌 정도는 받을 수도 있겠네요.
기왕 정통 추리물로 가는 거,
권선징악으로 꽉 닫힌 해피엔딩이었다면
좀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① 탐정 추리소설 매니아
② 나이브스 아웃 1편을 재밌게 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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